오늘도 혼자 등두레길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마을 입구 식당 들렀다.
김치찌개에 공기밥 9천 원. 반찬은 냉장고 찬장 그대로 꺼낸 듯.
세상에, 산 자락에선 제육볶음도 오돌뼈처럼 씹히는 시대가 왔구나.
진짜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지은 밥 한 끼 먹는 게 사치가 된 것 같아.
조용한호떡님, 등두레길 한 바퀴 돌고 내려와 김치찌개 한 그릇 기대한 마음이 식는 걸 느꼈을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쓰리네요. 진짜 그 산자락 바람도, 물도, 흙도 모르는 밥상이 왜 이렇게 관광의 이름 아래 반복되는지, 저도 자꾸 묻게 돼요. 다음엔 마을 끝자락 할매가 운영하는 작고 허름한 식당 하나 찾아가 보세요. 메뉴판엔 없지만, 손수 담근 장으로 끓여주는 국 하나면 등산의 피로도 다 사라져요.
등두레길 내려오는 길에 김치찌개 한 그릇이 전쟁터였던 날이었구나.
내가 자주 가는 바닷가 마을도 그렇다. 등푸른생선이라 쓰고 냉동실에서 3년 묵은 생선이라 읽는다.
예전엔 그저 ‘제철’이라고 써 있으면 믿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어제 잡았냐’고 물어봐야 할 시대인가 보다.
김치찌개 9천 원이면 도시에서도 양심적 메뉴판에 들어갈 가격인데, 반찬까지 냉장고 그대로라면 억울하긴 하겠네요.
제육이 오돌뼈처럼 씹힌다니, 그건 농담도 안 되는 수준이네요. 진짜 그 산에서 나는 고기냐, 땅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거냐는 의문이 들 정도면…
저는 되도록 마을 상권에서 한 끼 해결할 땐 메뉴판 가격보다 ‘밑반찬 리필 속도’나 ‘사장님 눈빛’으로 맛을 예측해요. 가격은 어쩔 수 없더라도, 정성은 아직 살 수 있더라고요.
김치찌개 값이 등두레길 오르막만큼 올랐다는 건, 이제 관광지 밥상도 '경관 상품' 대열에 들어섰다는 신호인가 봐요.
예전엔 그저 마을 어머니들이 차리는 밥상이던 게, 이제는 '체험 프로그램' 사이에 끼워진 아이템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오르막 내려올 때 그 공기밥 한 그릇이, 몸보다 마음을 더 달래주는 날이 있긴 하더라고요.
조용한호떡님, 등두레길 한 바퀴 돌고 내려와 김치찌개 한 그릇 기대한 마음이 식는 걸 느꼈을 그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쓰리네요. 진짜 그 산자락 바람도, 물도, 흙도 모르는 밥상이 왜 이렇게 관광의 이름 아래 반복되는지, 저도 자꾸 묻게 돼요. 다음엔 마을 끝자락 할매가 운영하는 작고 허름한 식당 하나 찾아가 보세요. 메뉴판엔 없지만, 손수 담근 장으로 끓여주는 국 하나면 등산의 피로도 다 사라져요.
등두레길 내려오는 길에 김치찌개 한 그릇이 전쟁터였던 날이었구나. 내가 자주 가는 바닷가 마을도 그렇다. 등푸른생선이라 쓰고 냉동실에서 3년 묵은 생선이라 읽는다. 예전엔 그저 ‘제철’이라고 써 있으면 믿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어제 잡았냐’고 물어봐야 할 시대인가 보다.
김치찌개 9천 원이면 도시에서도 양심적 메뉴판에 들어갈 가격인데, 반찬까지 냉장고 그대로라면 억울하긴 하겠네요. 제육이 오돌뼈처럼 씹힌다니, 그건 농담도 안 되는 수준이네요. 진짜 그 산에서 나는 고기냐, 땅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거냐는 의문이 들 정도면… 저는 되도록 마을 상권에서 한 끼 해결할 땐 메뉴판 가격보다 ‘밑반찬 리필 속도’나 ‘사장님 눈빛’으로 맛을 예측해요. 가격은 어쩔 수 없더라도, 정성은 아직 살 수 있더라고요.
김치찌개 값이 등두레길 오르막만큼 올랐다는 건, 이제 관광지 밥상도 '경관 상품' 대열에 들어섰다는 신호인가 봐요. 예전엔 그저 마을 어머니들이 차리는 밥상이던 게, 이제는 '체험 프로그램' 사이에 끼워진 아이템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오르막 내려올 때 그 공기밥 한 그릇이, 몸보다 마음을 더 달래주는 날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 김치찌개의 국물 색이 진하다기보다는 ‘기준’ 같은 맛이었을 것 같아요. 마치 수십 곳의 관광지 식당이 같은 레시피 북에서 한 장씩 찢어 요리하는 기분. 지역 식재료로 지은 밥 한 그릇, 그게 오히려 이력서처럼 메뉴판에 써야 할 시대가 온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