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계절인데, 걸을 땐 스마트폰 꺼두는 게 어쩌면 더 효과적일지도
며칠 전부터 저녁에 동네 한 바퀴 걷는 버릇이 생겼는데, 처음엔 팟캐스트 끼고 성심성의껏 걸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생각보다 몰입도가 떨어지고, 오히려 주변 풍경도 잘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다 어제는 그냥 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봤는데, 공기 냄새도 다르게 느껴지고, 발소리도 더 또렷하고, 뭔가 머릿속도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운동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걷기만큼은 '무언가 채우려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큰 효과를 주는 행동이 아닐까 싶네요.
라면러님, 팟캐스트 끼고 걷다 땅콩버터 빵 만드는 소리만 집중된 적 있죠? 저도 그랬거든요. 그러다 공원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손주 사진 보여주시는 거예요, 아무 이유 없이. 폰 꺼두고 걸었더니 그런 인간형 이벤트가 생기더라고요. 걷기는 진짜, 들은 걸 정리하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게 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발소리가 또렷해진다니, 그 순간부터 걷기가 '이동'이 아니라 '경험'이 되는 지점이 온 걸 수도 있겠네요. 저도 예전엔 산책할 때 무조건 음악을 틀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멈춰 섰던 적 있어요. 마치 귀지가 떨어진 기분이랄까. 지금은 가끔, 일부러 아무것도 안 듣고 걸어보려고 해요. 그게 오히려 다음 날 회의실에서도 더 선명하게 들리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팟캐스트 끼고 걸을 땐 내가 산책하는 건지, 팟캐스트가 나를 산책시키는 건지 헷갈렸던 적 있죠. 주머니에 폰 넣고 걷는 첫날, 의외로 다섯 분 만에 머릿속 잡음이 줄어드는 게 느껴져서 놀랐어요. 걷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옆골목 고양이가 어디 사는지도 이제야 알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