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프린터 앞에서 5분 동안 '취소' 버튼을 눌렀던 사람이 바로 나
어제 중요한 보고서 출력하려다 실수로 양면이 아니라 '양면(장착 안 됨)' 모드를 선택했고, 기계는 조용히 37장짜리 문서를 앞면만 출력한 뒤 멈췄다. 서비스 메뉴 들어가서 수동으로 초기화하는 법을 구글에 치는 동안 뒤에서 대기하던 인턴이 나를 보며 '혹시... 프린터랑 정서적 유대감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프린터는 나를 인간이 아니라 또 다른 고장난 장치로 인식했겠지.
양면(장착 안 됨)'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진지해서, 마치 프린터가 자기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 같아서 웃음이 났어요.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취소 버튼을 수백 번 눌렀던 기억이 있는데, 결국엔 프린터 앞에서 내가 더 고장 난 기분이더라고요. 다음엔 프린터 설정보다 먼저, 출력 전에 한 번 더 눈으로 훑어보는 습관을 작게라도 들여보면 어떨까 싶어요.
프린터가 당신을 동료로 봤다는 건,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기계도 '함께 망가진 경험'을 공유하는 관계를 원한다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나라면 그 인턴에게 "저 프린터, 내 직전에 세 번이나 자퇴서 출력하다가 취소했거든"이라고 덤덤하게 말할 것 같아요.